演員尹汝貞接受《衛報》採訪:成為演員純屬偶然

2021-11-19     昀澤     9549

이후 김기영 감독을 만나 같은 해 '화녀'(1971)로 영화계에 성공적으로 데뷔한다.

之後她與金綺泳導演見面,同年以《火女》(1971年)成功在電影界出道。

演員尹汝貞接受《衛報》採訪:成為演員純屬偶然

'화녀' 설정은 오늘날 기준에 비춰봐도 파격적으로 간통, 강간, 낙태. 살인, 자살, 심지어는 쥐 떼까지 등장한다. 그러면서도한국 사회 내 계급 차이와 가부장적 전통을 꼬집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.

從現在的標準來看,《火女》的設定也是破格的通姦、墮胎,還有殺人、自殺,甚至老鼠群的場面。但與此同時,還有諷刺韓國社會內部階級差異和父權傳統的沉重信息。

윤씨는 이후에도 '충녀'(1972)에도 출연하며 선정적이지만 사회적 메시지로는 가볍지 않은 작품을 이어갔다.

尹女士此後還出演了《忠女》(1972年),雖然有些煽情,但從其傳達的社會信息來看,這部作品並不輕鬆。

윤씨는 당시 남성 중심 한국 사회에서 솔직하고 열정적인 모습으로 독립적인 새 한국 여성상을 나타낸다고 가디언은 전했다.

《衛報》稱,尹女士在當時以男性為中心的韓國社會中,以坦率、熱情的樣子表現出了獨立的新韓國女性形象。

그는 "난 한국에서 미의 기준은 아니다. 여배우가 되려면 외모가 출중해야 하고 연기는 상관없었다"며 "그들에겐 난 이상한 모습이었을 것이다. 좋은 쪽으로. 현대적이고 순종적이지 않은 모습 말이다"고 말했다. 이는 자유분방한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한다.

她說:「我在韓國不是美的標準。要想成為女演員,外貌必須出眾,演技無所謂。對他們來說,我看起來應該挺奇怪的,不過是褒義的奇怪,就是很現代且不易馴服的樣子。」據說這是從自由奔放的母親那裡繼承來的。

1974년에는 유명 가수 조영남 씨와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가 한동안 연기 생활과 작별했지만 이혼하게 되면서 귀국 이후 다시 커리어를 쌓아나갔다.

1974年,她和著名歌手趙英南結婚,去了美國,此後一段時間告別了演藝生活。之後在離婚後,尹女士回國重啟了演藝事業。

그러나 당시 보수적인 한국 사회 분위기상 '이혼녀'라는 딱지 때문에 처음에는 영화 제작자들이 일을 주기 꺼렸다.

但是當時保守的韓國社會氛圍下,因為「離婚女」的標籤,起初電影製作人不願意給她安排工作。

하지만 윤씨는 좌절하지 않고 작은 역할부터 시작했다.

但是尹女士沒有沮喪,從小角色開始拍。

그는 "어떤 역할인지는 상관 안 했다.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. 그냥 일했다"고 말했다.

他說:「我不在乎是什麼角色。我別無選擇,只能去工作。」

이후 '바람난 가족'(2003), '하녀'(2010), '죽여 주는 여자'(2016)에서 파격적인 역할을 선보였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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